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리비아 내전 (문단 편집) == 배경 == 2011년,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면서 카다피의 철옹성 같던 권좌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리비아 내전]]이 발발, 끝내 카다피가 사살당하며 마무리되었다. 2011년 9월 16일(현지 시각), 유엔 총회는 표결을 통해 시민군 대표인 국가과도위원회(NTC ; National Transitional Council)가 리비아의 회원국 지위를 넘겨받는 것을 인정했다.[* 114개국이 찬성하고 17개국이 반대, 15개국이 기권했는데 반대한 17개국과 기권한 15개국이 어디인지는 [[http://www.un.org/News/Press/docs/2011/ga11137.doc.htm|여기의 ANNEX II에서 볼 수 있다.]]] 현재까지 NTC를 리비아의 합법 정부로 인정한 국가들과 그 일시 등은 영어 위키백과의 [[http://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recognition_of_the_National_Transitional_Council|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의 국제 승인]] 항목을 참조. 그러나 NTC를 조직한 각 세력이 반카다피라는 점 빼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속주의 군사독재자 카다피 축출 이후 꾸려진 새 정부가 무바라크 축출후 이집트 정국과 유사하게도 이슬람 원리주의 정파 형제단 계열인 것처럼 종교율법 샤리아를 현실사법에 적용하려 들며 많은 우려를 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112&aid=0002238675|기사]] 거기다 리비아 인구의 3분의 1이라는 흑인계 인구에 대한 학살과 추방이 일어나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cslPrRLaQDI|아랍판 KKK가 풀려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런데 그 다음에 열린 총선에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687213|이슬람주의자들이 패배했다.]] 그리고 경제재건 작업도 충실하게 진행되어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30905093107841|2012년에 104.5%에 달하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africa/special-report-we-all-thought-libya-had-moved-on--it-has-but-into-lawlessness-and-ruin-8797041.html|2013년 9월 3일 인디펜던트 지 기사]]에 따르면 리비아는 현재 민병대 난립과 폭력에 시달리고 정부는 통제력을 잃고 있다. [[실패국가지수]]에서 리비아는 [[http://ffp.statesindex.org/rankings-2011-sortable|2011년에는 68.7점으로 111위를 기록했으나]] [[http://ffp.statesindex.org/rankings-2012-sortable|2012년에는 '''84.9점으로 50위'''가 되어]] 61계단의 '''지수 산정 사상 최대폭'''의 연간 상승을 기록했다.[* 링크에서 '2006~2012년 연간 최대폭의 악화'가 나오는데, 이 목록에 '말리 2012-2013 +11.4점 77.9→89.3'만 넣고 남아공을 빼 주면 완벽하게 2006~2013년 목록이 된다.] [[http://ffp.statesindex.org/rankings-2013-sortable|2013년에는 84.5점으로 54위를 기록했다.]] 여러 모로 [[신해혁명]] 이후의 [[중화민국]]과 비슷했던 상황이었다.[* [[독재]] 타도와 [[혁명]]이 성공되었지만 그 이후의 [[군벌]]들로서의 분열 등이 흡사했다.] >"리비아 사태에 개입하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 날(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를 위해 계획하지 않은 것이 아마도 최악의 실수"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https://www.yna.co.kr/view/AKR20160410073351071|#]] 심지어 카다피 정권을 몰아낸 [[미국]]이나 기타 서방 나토 국가들조차도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2011년 가을 카다피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 기뻐했지만 정작 [[미국]]은 이후 리비아를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계획이나 준비가 전무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등 일부 이슬람 국가들에서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를 상정해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리비아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과도 군정 기간을 거친 다음 총선을 치러 정식 신정부를 출범시키자고 전쟁에 참전한 서방 국가들에게 제안하였으나 당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그리스, 캐나다, 스페인 등 서방 나토 국가들은 카다피 이후 리비아의 문제는 리비아인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해야 한다며 이 제안을 무시해버렸다.] 결국 리비아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본인도 이러한 점에 대해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정권 붕괴 후 구체적 계획 없어 혼란이 초래된 점을 시인했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 [[예멘 내전(2014년)|예멘 내전]] 등과 함께 [[아랍의 봄]] 이후에 아랍 국가들이 앓고 있는 부작용인 사회/정치적 불안을 통틀어 말하는 [[아랍의 겨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